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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사렛

 

   >> 처녀 마리아가 그리스도를 잉태한 곳, 나사렛(Nazareth)

나사렛은 이스라엘의 비옥한 농경지 이스르엘 평야 부근의 작은 언덕 위에 위치한 자그마한 도시로 처녀 마리아가 그리스도를 잉태한 곳이다. 그래서 유명한 성지로 나사렛은 전세계에서 온 순례자들로 항상 붐비고 있다.

베들레헴에서 예수님을 낳은 마리아는 잠시 에굽으로 피난갔다가 다시 남편 요셉과 이곳으로 돌아와 생활을 시작하였고, 예수님은 전도활동을 펴기까지 30년동안을 이곳에서 목수의 아들로 지내셨다. 원래 나사렛은 크리스찬이라는 말로 히브리어로는 '노즈리(Notzri)', 아랍어로는 '낫스라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바로 '나사렛 사람들'을 뜻하는 것이다. 현재 이곳은 아랍사람들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아랍인 마을이지만 특이하게도 나사렛에 살고 있는 많은 아랍인들은 예수를 믿고 영접하는 크리스챤이다.

※ 나사렛이란 동네에 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 (마 2:23)
※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요 1:45)
※ 그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 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막 1:9)
※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들어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눅 1:26)

 

>> 아마겟돈=므깃도(Megiddo)

이스라엘의 가장 비옥한 이즈르엘(Jezreel)평야 중에서도 므깃도는 동서남북을 서로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로 전략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 이에 가나안 땅 중에서도 이 곳은 역사적으로 전투가 가장 많이 벌어졌던 장소이다. 솔로몬 왕은 므깃도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이곳을 강화시켰고, 이 지역을 행정적 중심지로 만들었다. 그러나 923년경 애굽의 시삭(Sisak)은 므깃도를 파괴하였고 그 후 아합왕 때 이곳은 다시 재건되었다.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아마겟돈(Amageddon)'은 므깃도 산(Har megiddo)이라는 히브리 말을 희랍어로 옮긴 말이다. 므깃도는 1925-39년에 시카고 대학의 동양 연구소(Oriental Institute)에 의해 발굴되었다.

이 곳에는 기원전 3000년부터 큰 도시가 형성되어 있었다. 솔로몬은 그 당시 군사력의 상징인 기병대를 육성하여 '병거성(City of Chariots)'과 '마병의 성(City of Horsemen)'을 건설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므깃도는 이러한 병거, 마병성의 하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므깃도 발굴 당시 말의 고삐를 매는 돌기둥들이 늘어서 있는 큰 장소를 발견하였는데, 약 450마리 정도의 말과 150대의 병거를 수용할 수 있는 큰 규모로 중앙에는 말에게 물을 먹이던 큰 물통도 있었다. 이에 일반적으로 이것을 '솔로몬의 마병장'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실제로 발굴된 지층은 솔로몬왕 때의 주거층이 아니라, 이보다 약 100년 후인 아합왕 때 만들어진 것으로 판명되었다.(BC 869-850). 므깃도는 시삭에게 파괴되었다가 아합왕 때 복구되었는데, 아합왕은 이 곳에 솔로몬 시대의 것과 비슷한 형태와 규모의 마병장을 건설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므깃도에서 발굴된 것 중에서 가장 흥미롭고 놀라운 것은 당시의 발전된 공업 기술을 볼 수 있는 우수한 수로 장치이다. 큰 통로가 바닥까지 내려와 있고 그 통로의 끝에서 바위 구멍을 뚫어 도시 밖의 샘으로부터 도시 내부로 수로를 끌어들이도록 되어 있다. 샘의 입구는 포위하고 있는 적에게 발견되지 않도록 흙으로 덮여 있다. 이는 30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잘 보존되어 있다.

 

>> 마리아 수태고지교회(Church of the Annunciation)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눅 1:31-32)

마리아 수태고지교회는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나타나 예수 수태의 사실을 전해 주었다는 장소에 세워진 교회이다. 주후 4세기 로마 콘스탄티누스 황제 때 처음 세워진 이래 파괴와 복구를 다섯차례나 반복한 끝에 현재의 바실리카 교회는 1969년, 20세기의 가장 뛰어난 교회건축가 중의 하나로 알려진 이탈리아인 무지오에 의해 설계되어 건축된 것이다.

교회의 넓은 벽면에는 전세계에서 보내온 성모 마리아와 성자 예수의 모습을 주제로 한 성화들이 가득 걸려져 있다. 또한 교회의 안쪽 바닥은 온통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어 한층 그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다. 제단 앞에서 천장을 올려다 보면 60m나 되는 뾰족탑이 마치 거꾸로 세워 놓은 듯한 백합꽃처럼 느껴지는데, 이 원뿔 모양의 천장에서는 천사가 마리아에게 잉태를 고지하듯 밝은 빛이 제단까지 내리 비추고 있다.

 

>> Caesarea

가이사리아는 텔아비브와 하이파의 중간 지역에 위치한 지중해 연안의 항구도시로 갈릴리 바다에서 북으로 약 30마일 떨어진 이투레아 도시였다. BC 3세기에 페니키아의 도시가 있던 지역인데, 이 도시는 헤롯왕 시대에 식민지 통치와 국제무역항의 중요한 거점도시로 헤롯왕은 거기에 사원을 건축했고, 그의 아들 필리보는 그 도시를 확장하고 로마 황제 케사르 아우구스투스의 성을 따서 그곳의 이름을 가이사리아(Caesarea)라고 명명했다. 그러나 로마 사람들은 로마 제국 내에 가이사리아란 명칭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구별하기 위해 필립보 가이사리아라고 불렀다고 한다.

당시 가이사리아는 이집트의 항구도시 알렉산드리아, 시리아의 안디옥과 함께 지중해의 주요 3대항구 중의 하나로 국제 무역항의 중심지로 로마에서 파견된 유대총독이 거주했으며, 예수를 재판한 빌라도도 이곳에 살았다는 기록이 있다.

주변에는 헤롯왕이 건설한 고대 수로와 로마식 원형경기장과 군영, 십자군 시대의 성채 등을 볼 수 있다.

 

>> 이스라엘 최남단의 도시, 엘랏

엘랏은 이스라엘 최남단의 도시로 이스라엘이 홍해로 나가는 항구도시로 엘랏 좌우의 국경은 요르단과 이집트와 접해 있다. 정치, 군사적으로는 엘랏은 이스라엘이 홍해로 진출하는 유일한 항구라는 점에서 중요성을 갖는 도시다.

엘랏의 관광은 감청색의 깨끗한 홍해, 그리고 해안가의 리조트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엘랏의 주요 관광명소는 해저 수족관, 산호바다 등이다.

이곳 엘랏은 고대로부터 이집트로 가는 통상로가 되어온 곳으로 성서에도 여러 번 언급된 곳이라 성지순례 차원에서도 가볼만한 곳이다.